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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동맠


형아

ᴍᴀʀᴋᴀʀᴏɴ



"... 형아?"



동혁에게는 첫사랑이 있었다. 흐릿한 기억을 헤집으면 첫사랑의 까만 먹물색의 머리카락이 먼저 떠오른다. 동혁은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 새까만 머리통을 보고 자랐다. 그러니까, 동혁이 첫사랑을 첫사랑이라고 인정하게 된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지금 생각해보면 자연스레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그땐 그랬었다고. 그렇게 깊은 사랑도 아니었고 살면서 어쩌다 한번 생각나는 사람인 것 같다고. 분명 그렇게 치부하고 있었는데, 분명 그랬는데 말이야.



"오랜만이네, 동혁아."



근 10년 만에 들은 목소리에 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는지. 예전과 다른 푸슬푸슬한 샛노란 머리가 왜 원망스러웠는지. 동혁은 전혀, 정말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잘 지냈어?"



어디 갔다가 이제야 나타난 건지 동혁을 지나쳐 뻔뻔스레 남의 집 마당에 들어온 그는, 첫사랑은, 아니 이민형은 평상에 드러누웠다. 동혁은 대문을 마주한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민형은 아무 대꾸 없는 동혁에게 신경을 두지 않았다. 잘 지냈냐는 말은 그냥 해본 말이었으니까. 아무 말 없이 떠났던 민형은 동혁이 잘 지내왔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도 그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무엇보다 민형 자신도 썩 잘 지낸 편이 아니었으니.



"지금 뭐하는거야?"

"..."

"여긴 뭐하러 왔어?"



간신히 정신을 차린 동혁은 기가 차다는 듯 민형을 쏘아붙였다. 민형은 듣기 싫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이런 말을 들을 각오를 하고 온 것 처럼.



"왜 아무 말이 없어?"

"... 너도 내가 웃기지?"



동혁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겨우 뱉은 문장은 그 자체로 물을 머금었다. 힘없는 몸을 일으켜 앉은 민형은 대문 앞의 동혁을 올려다 보았다.



"나도 이런 내가 웃긴데 너는 오죽하겠니."



동혁의 마음이 일렁였다. 올려다 보는 투명한 눈은, 동혁이 울 수밖에 없었던 예전의 눈과 같았다. 그 옛날에도 맑았던 눈이 이 순간마저도 어김없어서 잠시 그때의 우리를 착각하게 했다.

당연하게도 민형과 동혁의 감정은 쌍방이 아니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래나 저래나 민형은 동혁의 첫사랑이었고 그래서 이루어지지 않은 거라고 동혁은 합리화했다. 이 합리화는 어쩌다 민형이 생각날 때면 도움이 되기도 했다.

어차피 안 될 사랑이었잖아.

생각하지 말자.

그리워하지 말자.

나를 떠난 사람이잖아.

동혁은 끊임없이 되뇌었다.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가면서 까지 민형을 떨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동혁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동혁은 민형을 생각보다 많이 좋아했다는 것을. 어떻게 하든 결국 끝은 민형이었다. 이제 동혁은 민형을 그리워하지 않는 척 하는 것에 지쳤다. 진심은 그게 아니었는데.

사실 너무 보고 싶어.

나 아직도 형아를 사랑해.

민형을 다시 만난다면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말들이었다. 동혁은 언제나 민형을 사랑했다. 자신을 형아 라고 부르라던 그들의 처음부터, 아침마다 대문 앞에서 동혁을 기다리던 하얀 다리도, 저녁에 놀자며 몰래 불러내던 그 목소리도, 수박을 잘라 와 동혁의 입에 넣어주던 예쁜 손도, 웃을 때면 찡그려지는 그 얼굴도, 심지어는 떠난 자리에 남은 향기까지도 사랑했다.

동혁은 민형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렇지만 지금으로써는 말을 아끼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랐다.



"... 들어와."



그래도 민형을 내칠 수는 없으니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민형은 그 말을 기다렸는지 벌떡 일어나 집안으로 들어갔다. 민형은 들어가자마자 물부터 찾아 마셨다. 그리고는 곧장 선풍기를 틀고 그 앞에 앉았다. 동혁은 그 일련의 과정들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대체 누가 집주인인지 모를 모양새였다. 동혁은 그 자연스러움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정말 민형이 돌아온 게 믿어지지 않아서, 참 이상했다.



"동혁아."



선풍기를 끌어 안고 있던 민형이 동혁을 불렀다. 동혁은 대답없이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고마워. 아직도 형아라고 불러줘서."



민형은 진심인 듯 웃으며 말했다. 동혁은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씨발 그게 뭐라고. 그 호칭이 뭐라고.



"나 사실 네가 형아라고 불러주는 게 좋아서 네가 나 부를 때 까지 기다렸잖아."

"..."

"네 주위 서성거리면 네가 형아, 여기서 뭐해? 하고 먼저 물으니까."



동혁을 흉내 내는 민형은 추억을 회상하는 듯 행복해 보였다. 동혁은 웃었다. 웃겨서 웃었다. 누구라도 그 흉내를 본다면 웃었을 것이다.

형아 그거 알아? 진짜 좆도 안 비슷해.



"다음부턴 내 흉내 내지마라."

"왜? 별로야?"

"응. 존나."



그닥 좋은 말이 아니었는데도 민형은 숨 넘어갈 듯 웃는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모르겠지만 동혁도 웃었다. 이번에는 민형이 웃어서 따라 웃었다.



"동혁아 너 진짜 웃기다."

"형이 더 웃겨."

"형?"

"아니, 그래 형아."



무의식 중에 형이라고 말했더니 민형이 다시 물어왔다. 그래서 정정했더니 민형은 또다시 웃는다. 별 것도 아닌걸로 웃는 형아가 더 웃기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내가 이민형을 좋아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웃음이 많아서, 였으니.

동혁은 가난했지만 민형도 가난했다. 둘 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 학교를 다니는 것이었다. 힘겨운 나날들 속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민형 덕이었고 동혁에게 삶의 원동력 자체였다. 그때도 민형은 웃음이 많았다.

민형의 졸업식 날, 동혁은 펑펑 울었다. 무엇이 슬퍼서 울었던 것인지 동혁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다. 더이상 등하교를 함께 못 한다는 것이 아쉬워서? 민형이 이제 성인이 된다는 것이 싫어서? 생각해봐도 정확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냥 슬펐다.

민형은 우는 동혁을 조심스레 안아주었다. 우는 동혁이 안쓰러운 동시에 고마웠다. 그도 그럴 것이 민형의 졸업식에는 무관심한 부모님을 대신해 동혁이 끝까지 있었다.

민형은 순간 동혁을 안은  자신의 손에 들린 꽃다발을 던지고 싶었다. 동혁이 돈을 모아서 샀을 이 꽃다발을 내가 받아도 되는 건지. 왜 우리는 평생 흙구덩이에 파묻혀 있어야 되는 건지. 왜 우리는 서로에게만 의지해야 되는 건지. 왜 우리는 곁에 아무도 없는 건지. 왜 우리는, 대체 왜...

지긋지긋했다. 모든 것이. 심지어 동혁마저도. 민형은 괴로웠다. 동혁을 지겨워하는 제 자신이 끔찍하고 역겨웠다.

어떻게 동혁이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그 예쁜 아이를 내가 어떻게 미워할 수 있어? 내가 미친걸까? 이건 누구의 잘못이지? 동혁이의 잘못이야? 아니야. 그럼 나의 잘못이야? 내가... 이건 분명... 내가 잘못한거야.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민형은 그저 이 가난하고 허물어진 동네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였다. 동혁을 뒤로 하고 사라진 이유가.

다음 해, 눈이 흩날리던 어느날, 동혁은 혼자 졸업을 맞이했다.

민형은 아무것도 모르는 동혁을 이해시키려고 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그래서 무작정 이곳을 벗어났다고.

동혁은 소리치고 싶었다. 굳이 아무 말 없이 떠났어야 됐느냐고. 하지만 그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때의 동혁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민형을 붙잡았을 것이 분명했다. 동혁은 민형을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거 뻔히 알았으면서.

이민형은 존나 나빴다.

그런데 착하기도 존나 착했다.

그게 내가 이민형을 놓지 못하는 이유였다.



"... 갈거지?"



동혁은 혹시나, 하는 투로 물었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였다.



"... 가야지."



반전은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뭘 기대한거지? 설마 안 가겠다는 말을 기대한거야? 내가 뭐라고?



"내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거야?"



동혁은 쓸데없이 용기 있고, 무모했다.



"아니. 갈거야."



대답을 뻔히 알면서. 동혁은 쓰게 웃었다.



"당연한 걸 물었네, 내가."

"그렇지?"



응. 그렇네. 잘 살아보겠다고 떠난 사람한테 괜한 말을 했네.

민형은 단호하게 뱉은 말과 다르게 동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당장 간다는 말은 아니야. 내일. 내일 간다고."



그게 그거지, 뭘. 동혁은 그게 또 우스워서 웃었다.

해가 기울고 달이 떴다. 동혁은 지금까지 민형과 한 공간에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자각했다. 하지만 둘의 사이는 어색하지 않았고, 나름대로 괜찮았다. 동혁이 예상한 그림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나 이것으로, 완벽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혁은 영원히 민형을 이길 수 없다. 새삼스럽지만 당연한 것이었다.

잠자리가 불편한지 민형은 내내 뒤척였다. 동혁은 잠에 들지 못했다.



"형아, 자?"

"..."



민형은 대꾸하지 않았다. 동혁은 슬프게 웃었다. 민형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동혁이 무슨 말을 꺼낼지, 듣고 싶지 않았던 묵혀뒀던 얘기를. 그러나 동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형아, 내가 이래서 형아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야. 형아도 알잖아 내가 형아 좋아하는 거. 나 그것도 알아. 형아는 나 안 좋아하는거. 나는 그냥 동생일 뿐이잖아. 그런데 왜자꾸 아쉽지? 자꾸만 말도 안되는 생각이 들어. 형아가 나를 좋아했으면. 나를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을 품게 돼.

형아 나는 우리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는 형아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형아. 나는 형아가,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동혁은 구구절절 하고 싶은 말들을 함축시켜 한 문장으로 내뱉었다. 슬프지만 달큰한 그런 고백을. 어느새 동혁 쪽으로 몸을 돌린 민형은 그저 웃어보였다. 동혁이 좋아하는 하얀 웃음으로. 동혁은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아, 우리는 행복할 수도 없고 형아는 나를 사랑할 수도 없겠구나. 그래도 형아는 내내 행복해야 돼. 죽을 때까지 행복해야 돼. 내가 매일 울 만큼, 내가 형아를 미워할 만큼 행복해야 돼.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 대신 눈물이 흘렀다. 동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물이 구겨진 얼굴을 타고 떨어졌다. 눈앞의 민형은 울지 않았다.

그런데 형아, 우는 건 난데 왜 형아가 더 슬퍼보여? 왜 자꾸 나를 헷갈리게 해.

다음날, 민형은 사라지고 없었다. 애초에 민형은 실재하지 않은 듯 고요한 적막이 이어졌다. 그 위를 덮는 매미소리만이 여름을 실감하게 했다. 민형은 하룻밤의 신기루 같이 그렇게 동혁을 애타게 하고. 목마르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그런 첫사랑이었다. 아, 보고 싶다. 동혁은 무의식 중에 그리움을 뱉어냈다.

형아, 원래 첫사랑은 이렇게 힘든 거야?

무더위에 땀방울이 티셔츠를 적셨다. 지독하게도 긴 여름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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